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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식 지산그룹회장] 화장실 창문을 키우자


CBN뉴스 기자 / iyunkim@daum.net입력 : 2026년 08월 13일
↑↑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
ⓒ CBN뉴스 - 경주
[한주식 지산그룹회장] 집을 지을 때마다 이상하게 여겨온 것이 하나 있다. 방마다 창은 시원하게 내는데, 화장실 창만은 어른 얼굴 하나 겨우 들어갈 만큼 작게 낸다. 그것도 모자라 불투명 유리를 끼우고, 쇠창살까지 두른다. 하루에 몇 번씩 드나드는 공간을 왜 굳이 감옥처럼 만들어 놓는가.

이 관습에는 뿌리가 있다.

첫째는 돈이다. 유리는 원래 대단히 비싼 물건이었다. 게다가 영국은 1696년부터 150여 년간 집에 달린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고, 프랑스도 문과 창에 세금을 물렸다. 유리 자체에도 별도의 세금이 붙었다. 창을 크게 내면 세금과 자재값이 이중으로 들었으니, 사람들은 창을 줄이고 벽돌로 막았다. 하물며 화장실 창을 크게 낼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이것이 먼 옛날 이야기만도 아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유리값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다 지어놓고도 창을 비워두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둘째는 부끄러움이다. 그 시절에는 여인의 발목이나 배꼽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큰 흉이었다. 신체의 일부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수치였으니, 옷을 벗는 공간은 세상의 눈으로부터 철저히 차단해야 했다. 창을 작게 내고 쇠창살을 다는 것이 도둑을 막는 일이면서 동시에 시선을 막는 일이었다.

셋째는 관념이다. 동서양 모두 뒷간을 부정한 곳으로 여겼다. 우리 조상은 뒷간을 집 밖 구석에 두고 측신(廁神)이 있다고까지 했으며, 유럽에서도 화장실과 목욕간은 지하나 뒤편으로 밀어 넣었다. 성(聖)과 속(俗)을 가르는 관념 속에서 화장실은 감춰야 할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이유가 지금 하나라도 남아 있는가.

유리값은 이제 창호 공사비에서 큰 비중이 아니다. 창문세는 백몇십 년 전에 없어졌다. 발목이 보이면 흉이라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배를 드러낸 옷이 거리에 흔하다. 화장실 가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때가 되면 가는 곳이다. 감춰야 할 이유가 사라졌는데 감추는 형식만 남았다. 남은 것은 관습의 껍데기, 곧 유물(遺物)이다.

방범은 어떤가. 도둑이 아주 없어졌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방범의 기술이 쇠창살에서 CCTV와 센서, 출입 통제로 옮겨갔다는 것은 분명하다. 창살 하나에 집의 안전을 걸던 시대는 지났다. 엿보는 문제 역시 창을 크게 내면서도 해결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창의 위치를 시선이 닿지 않는 방향으로 잡고, 아래쪽은 간유리나 필름으로 처리하고 위쪽은 맑은 유리로 두면 된다. 루버 하나로도 정리된다. 프라이버시는 창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오히려 창을 키워서 얻는 것이 훨씬 크다.

화장실은 집에서 가장 습한 공간이다. 곰팡이와 냄새는 결국 환기와 채광의 문제다. 창이 크면 공기가 빠르게 돌고, 햇빛이 들어와 벽과 타일을 말린다. 기계 환기 팬 열 개보다 열린 창 하나가 낫다는 것은 집을 여러 채. 지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다. 좁고 어두운 화장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어지러움도 결국 공기와 빛이 부족해서 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말하고 싶다. 건물의 미관이다. 지금 우리 도시의 건물들을 밖에서 보라. 벽면 한쪽에 유독 작고 어색한 창이 하나 박혀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하고 안다. 창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 입면이 어지럽다. 화장실 창을 다른 방 창과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으로 내면, 밖에서는 어디가 화장실인지 알 수 없다. 입면이 정돈되고 건물이 단정해진다. 감추려고 작게 낸 창이 오히려 화장실의 위치를 광고하고 있는 셈이니, 이만한 역설이 없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쓰자는 말은 많이 한다. 그러나 청결은 걸레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빛과 바람이 드는 공간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화장실 창문을 키우는 일은 위생의 문제이고, 건강의 문제이고, 미관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낡은 부끄러움을 벗는 일이다.

창문세도 없고, 유리도 싸고, 부끄러움도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왜 아직 백 년 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창을 좁게 내고 있는가.

화장실 창문을 키우자.
CBN뉴스 기자 / iyunkim@daum.net입력 : 2026년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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