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 | | ⓒ CBN뉴스 - 경주 | [지산그룹회장, 명예 경영학 박사 한주식] 시골에서 말하는 국시와 도시에서 말하는 국수는 겉으로 보면 같은 말처럼 보인다. 둘 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길게 밀거나 썰어 삶아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둘은 단순히 발음만 다른 말이 아니다. 국시와 국수에는 만드는 방식도 다르고, 먹는 사람의 생활도 다르고, 그 말에 담긴 정서도 다르다.
도시에서 말하는 국수는 대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밀을 가져다가 껍질을 벗기고, 배아를 빼고, 하얗게 정제해서 고운 밀가루를 만든다. 그 밀가루로 반죽을 하고, 기계로 뽑고, 말리고, 포장해서 시장이나 가게에 내놓는다. 그래서 국수는 깨끗하고 하얗고, 굵기도 일정하고, 삶으면 매끈하다. 누가 만들어도 비슷한 맛이 나고, 어디서 사도 모양이 비슷하다.
그러니까 국수라는 말에는 도시의 냄새가 있다. 시장, 가게, 공장, 포장지, 상품 같은 느낌이 붙어 있다. 돈을 주고 사 오는 음식, 이미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음식, 팔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뜻이 강하다. 그래서 국수는 상업적인 표현에 가깝다. 말하자면 국수는 시장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말하던 국시는 다르다.
시골에서는 밀을 그렇게 하얗게 정제해서 쓰지 않았다. 밭에서 거둔 밀을 그대로 가져다가, 껍질과 배아가 붙어 있는 통밀 상태로 맷돌에 갈았다. 맷돌에 밀을 넣고 돌리면 하얗고 고운 가루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껍질도 섞이고, 배아도 섞이고, 거친 가루도 함께 나왔다. 색도 희지 않고 약간 누렇거나 거무스름했다. 손에 만져보면 도시 밀가루처럼 보드랍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했다.
그런 밀가루로 반죽을 하면 반죽도 매끈하지 않다. 손에 묻고, 갈라지고, 밀대로 밀어도 공장 국수처럼 일정하지 않다. 어떤 것은 굵고, 어떤 것은 얇고, 어떤 것은 짧고, 어떤 것은 삐뚤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국시의 맛이 있다. 국시는 눈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집안 형편과 손맛과 그날의 날씨와 사람의 정으로 먹는 음식이다.
집에서 국시를 한다고 하면, 그건 단순히 밥 한 끼를 준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밀을 갈고, 가루를 치고, 물을 맞추고,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고, 칼로 썰고, 솥에 물을 끓이고, 장을 풀어 국물을 내는 일 전체를 말한다. 어머니 손, 할머니 손, 며느리 손, 아이들이 옆에서 구경하던 풍경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예전 시골에서는 “국수를 먹자”라고 하기보다 “국시 해 먹자”, **“오늘 국시 한다”**고 했다. 이 말은 훨씬 살아 있는 말이다. “국수 먹자”는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먹자는 느낌이라면, “국시 하자”는 지금부터 집안에서 만들어 먹자는 느낌이다. 반죽을 하고, 밀가루를 묻히고, 칼질을 하고, 솥 앞에 모이는 생활이 들어 있다.
또 시골에서는 양을 불리거나 구수한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에 다른 것을 섞기도 했다. 밀을 통째로 갈아 만든 거친 가루에, 보리를 찧을 때 나오는 거친 분말 같은 것을 섞어 반죽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색은 더 거무스름하고, 맛은 더 투박하고, 배는 더 든든했다. 그런 것으로 국시를 만들면 성긴 칼국수, 곧 성칼국시 같은 것이 되고, 같은 재료를 국시가 아니라 떡처럼 만들어 찌거나 구우면 개떡이 되었다.
개떡도 마찬가지다. 요즘 말로 들으면 이름이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개떡은 가난한 시절의 생활 음식이었다. 곱게 정제한 흰 밀가루가 아니라, 통밀가루와 보리 가루가 섞인 거친 가루로 만든 음식이다. 그래서 개떡은 맛이 세련되지는 않아도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었다. 국시와 개떡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음식이다. 하나는 길게 썰어 국물에 넣은 것이고, 하나는 뭉쳐서 떡처럼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시는 자가적인 말이다. 집에서 직접 해 먹는 말이다. 가족끼리 먹는 말이다. 누군가 팔더라도 그 방식이 공장식이 아니라 집안식이고, 손으로 만들고, 가족 밥상에 올라오는 느낌이면 국수보다 국시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안동에서 안동국시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안동국수라고 해도 뜻은 통하겠지만, 제대로 된 말맛은 안동국시다. 안동국시는 그냥 공장에서 뽑은 국수가 아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손으로 밀어 썰어 만든 음식이다. 콩가루가 들어가서 맛이 구수하고, 국물도 부드럽고 깊다. 이 음식은 상품 이름이라기보다 한 집안의 음식, 한 지역의 음식, 손맛이 남아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국수보다 국시라는 말이 더 살아 있다.
반면 국수는 규격화된 말이다. 하얀 밀가루, 공장, 기계, 포장, 판매, 유통의 말이다. 도시 사람들은 국수를 사 온다. 마트에서 사고, 시장에서 사고, 식당에서 사 먹는다. 국수는 상품이 되면서 모양이 일정해지고, 맛도 일정해지고, 이름도 표준말처럼 굳어졌다. 그래서 국수는 깔끔하고 편리하지만, 국시가 가진 집안 냄새와 흙냄새는 덜하다.
이 차이를 말로 구분하면 아주 재미있다.
국수는 사 오는 것이고, 국시는 해 먹는 것이다.
국수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고, 국시는 부엌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수는 하얀 밀가루의 말이고, 국시는 통밀과 맷돌의 말이다.
국수는 상품의 이름이고, 국시는 생활의 이름이다.
국수는 도시의 말이고, 국시는 시골의 말이다.
옛날 시골집에서 국시를 한다고 하면, 마당이나 부엌 어디엔가 맷돌이 있고, 밀가루 냄새가 나고, 손에 반죽이 묻고, 칼질 소리가 났다. 국시 가닥은 공장 국수처럼 반듯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그 집의 형편이 들어 있고, 그날 만든 사람의 손맛이 들어 있었다. 굵은 것은 굵은 대로 씹히고, 얇은 것은 얇은 대로 부드럽고, 국물은 탁하지만 구수했다.
그 탁한 국물이 바로 국시의 맛이다. 정제한 흰 밀가루 국수는 국물이 비교적 맑고 깔끔하지만, 통밀을 갈아 만든 국시는 껍질과 배아가 섞여 있어서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하다. 요즘 사람들은 그것을 건강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그냥 그렇게 먹었다. 따로 건강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밀을 그렇게 갈았고, 그렇게 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니 국시와 국수의 차이는 음식의 차이이면서 시대의 차이다. 정제와 비정제의 차이이고, 공장과 부엌의 차이이고, 상품과 생활의 차이다. 또 도시와 시골의 차이이고, 사 먹는 문화와 해 먹는 문화의 차이다.
국수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국수는 국수대로 필요하다.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국수는 편하고 빠른 음식이다. 하지만 국시라는 말은 거기에 없는 것을 품고 있다. 국시는 밀을 심고 거두고 갈아 먹던 사람들의 말이다. 배고픈 시절에 식구들 배를 채우던 말이다. 하얗고 고운 음식보다 거칠어도 든든한 음식을 귀하게 여기던 말이다.
그래서 국시라는 말에는 정이 있다. 조금 투박하고, 조금 촌스럽고, 조금 거칠지만, 그 안에는 집안의 온기가 있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국시는 집에서 밀을 갈아 손으로 만들어 먹던 시골의 음식이고, 국수는 정제한 밀가루로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도시의 음식이다. 국시는 자가적인 표현이고, 국수는 상업적인 표현이다. 국시는 가족의 밥상에서 나온 말이고, 국수는 시장과 공장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게 줄이면 이렇다.
국수는 돈 주고 사 먹는 면이고, 국시는 손에 밀가루 묻혀가며 해 먹는 면이다.
국수는 포장지에서 나오고, 국시는 어머니 손끝에서 나온다.
국수는 배를 채우는 음식이고, 국시는 기억까지 채우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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