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영사관 방문과 통국사의 감동적 환영지난 10일(목) 새벽 5시 10분 분황사 주차장에서 출발한 일행은 김해공항을 거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주오사카 총영사관을 방문하여 진창수 총영사의 환대를 받으며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과 재일교포들의 삶을 다룬 영상을 시청했다.
분황사 주지 성제스님은 "불교를 통해 한일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라며 “일본 불교의 기원이 원효성사와 의상대사에 있고 특히 한국 교민과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오사카이기 때문에 관계개선과 한국불교 세계화에 그 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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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진창수(주오사카 총영사), 좌측 성제스님(분황사주지) , 우측 차은정(원효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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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국사 법담의 깊은 울림통국사에서 가진 법담은 이번 기행의 백미였다.
성제스님은 "원효는 한국 불교의 조종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며 "원효 스님의 사상을 정리하기 위해 자료를 모아 2년 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국사 주지 무애스님은 "신라의 원효와 의상의 화엄사상은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며 "사상은 틀리더라도 전쟁을 일으키기보다 본질에 들어가면 같다는 것이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이 아닌가? 라고 답했다.
무애스님은 오사카 사천왕사를 백제 불교 전래의 문화유산으로 소개하며, 일본 화엄종이 통일신라 원효의 화엄종과 정토종을 받아들여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고 , 특히 원효의 유심안락도가 일본 정토종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현재 원효스님의 사상을 현대에 적용하여 일심과 무애, 화쟁을 시현하는 불국 정토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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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통국사 최무애 주지스님과 우측 분황사 성제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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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갈하게 차려진 차와 전통양갱, 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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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말차 재배지 고산사의 원효성사 진영둘째날인 11일(금) 교토 산중에 위치한 고산사를 방문했다. 8세기 창건 후 13세기 명혜스님(1173-1232) 에 의해 중흥된 원효성사 진영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진영의 가사 세부 묘사는 귀중본으로 평가되며, 원효의 복식 형태와 의상학적 의미를 담은 실물 문화유산으로 간주된다.
고산사를 중창한 명혜스님은 원효와 의상의 실천적 가르침을 본보기로 삼는 참선 수행자로서 일본불교가 원효성사와 의상대사를 사표로 삼으며 두 고승을 수행의 스승으로 여기는 전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산사 타무라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명혜스님이 얼마나 원효성사를 사모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원효 일대기가 그려져 있는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펼치는 순간 그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원효의 발자취였다.
고산사를 둘러 싼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장대의 차 밭을 둘러보던 순간 박지수씨(원효회 회원)의 “무지개다” 라는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우리 12명을 둘러싼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아니고 맑은 하늘에 무지개였다. 더 놀라운 것은 “생전에 명혜스님이 좋아했다는 강아지 마저 구름형상으로 나타나 너무도 선명하게 원을 그리고 있었고 원형의 무지개는 처음 보는 일이라 모두 설렘과 놀램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박현자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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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사 하늘에 나타난 원을 그린 무지개와 명혜스님이 사랑했던 강아지 형상의 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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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고산사 타무라스님, 좌측 분황사 성제스님 한일간 불교발전에 대한 차담을 나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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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혜스님(좌), 원효성사(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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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사 타무라 스님이 그림으로 된 원효와 신라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복사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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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사 타무라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원효기록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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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대학에서의 학술적 발견고산사를 나와 오타니대학 도서·박물관을 방문했다. 오타니대학은 진종·신종 불교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불교 문화와 고대 문헌을 폭 넓게 소장한 곳으로 우리는 박물관 과장인 스즈끼 씨의 안내로 원효성사 <판비량론> 원문이 담긴 마이크로 필름을 4인씩 나누어 영상실에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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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회 회원들이 판비량론 마이크로필름을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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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비량론> 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 저술로 신라시대 원효(617-686) 대사가 쓴 책의 일부가 일본에서 발견되었고 오타니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원효회는 오타니대학으로 공문을 보내고 원효회 일본지회 대표를 맡고 있는 카나이 마수미씨 (사단법인 한일교류협회 대표) 와 회원 방은영씨 (통역담당) 의 노력으로 마련된 것이니만큼 뜻깊은 자리였다.
미야자키 켄지 교수는 <판비량론> 복제본을 보여주며 당시 종이 재질이 마껍질로 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신라의 언어와 발음이 적힌 각필 (角筆·상아나 대나무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만든 필기구인 각필로 새긴 글씨) 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차은정 원효회 회장은 ”백제 무왕의 아들인 서동(마를 파는 아이라는 뜻)이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여 신라에 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준 기록이 있다“ 며 ”원효를 공부하다보면 불교 뿐만 아니라 신라의 춤, 신라의 음식, 신라의 소리와 신라의 향가 등 한국문화예술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고 말했다.
임종복씨 (신라금예술단 대표)와 김현숙(복식명장)씨는 ”원효회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과 종교와 무관하여 함께 하고 있으니 앞으로 벽을 넘어 융합의 시대를 여는데 일심하고자 한다“ 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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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제스님(원효학연구원 이사장) 과 미야자키 켄지교수가 판비량론을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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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불교문화 교류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겠다.이렇게 2박3일의 원효기행은 우리 모두에게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준 크나큰 경험이었다.
성제스님은 ”원효성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이번 여정이 과거의 유산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나를 찾는 데 큰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원효의 일심과 무애, 화쟁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며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과 이 시대 일상에서 현대 원효를 찾는다는 점에서 이번 기행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금번 기행에서 가장 고령자였던 배남이 , 안을봉 고문께서는 ”문화는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신뢰를 쌓으면서 소통해갔을 때 꽃을 피운다“라며 ”한국 불교에 영향을 받은 일본불교가 어찌 보면 우리보다 원효사상의 현대적 계승을 더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12일(토) 분황사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어 경내에 있는 모전석탑을 바라보니 온 우주가 마음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성제스님의 “우리는 하나” 구호와 함께 벅찬 가슴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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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신라시대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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