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발걸음 하나하나에 불심을 담아낸 이번 순례는, 고대의 숨결이 살아 있는 남산의 순례길을 통해 신라 불교의 정신적 유산을 현대적 의미로 되살리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됐다.
첫날 오후 2시, 입재식을 시작으로 삼릉과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선각육존불, 상선암 마애불, 바둑바위를 거쳐 배리 석조삼존불상까지 이어지는 본격적인 순례가 진행됐다.
<고요한 숲길에서 마주한 천년의 숨결>이튿날 오전에는 감실불상, 탑곡 마애불상군, 보리사 마애석불,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남산리 삼층석탑 등 남산 남쪽 능선의 불교유산을 순례했다. 이 여정은 남산이 단지 돌과 바위의 집합이 아닌, 고요한 숲과 절묘한 조형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법당임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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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경주 남산 불교문화 순례 |
ⓒ CBN뉴스 - 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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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진병길 원장의 ‘문화유산 활용과 경주 남산’, 김호상 박사의 ‘경주 남산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강의가 이어졌다. 이를 통해 순례자들은 불적에 담긴 신라인의 철학과 예술, 불심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천년 마애불 앞에서 깨어나는 나>순례 마지막 날인 23일, 열암곡 마애불 앞에 이르러 순례는 절정을 맞았다. 경건한 걸음으로 조용한 산길을 따라 올라 마주한 마애불은, 단순한 바위 부조가 아닌, 천년 전 수행자들의 침묵의 가르침을 품은 살아 있는 법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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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경주 남산 불교문화 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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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땅에 쓰러져 있던 이 마애불은 다시 세상의 빛을 받아 우리 앞에 섰다. 넘어졌기에 발견되었고, 묻혔기에 더 또렷해진 이 부처의 형상은 잊힌 진리를 다시 마주하는 감동 그 자체였다.
넘어져 계신 부처님 앞에 순례자들은 말없이 섰다. 걷고 또 걸어온 길, 닦고 또 닦아온 마음을 되새기며, 그 자리에 서서 ‘참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은 일정의 끝이 아닌, 다시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새로운 입재의 시간, 참된 나로 살아가는 길로 들어서는 시간이었다.
<발걸음 따라 울려 퍼진 무언의 법문>
장삼과 가사를 갖추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행자 수행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정신을 현재에 되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불심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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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경주 남산 불교문화 순례 |
ⓒ CBN뉴스 - 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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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마다 스며든 신라 승려들의 염화미소(拈華微笑)는 말 없이도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스님들의 엄숙한 태도는 자연과 유산, 인간과 정신이 하나 되는 불교문화 순례의 진수를 보여줬다.
<정성스레 짜인 여정, 마음에 스며든 불심>
이번 순례는 신라문화원의 사전 답사와 세밀한 기획을 거쳐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 맥락과 수행적 깊이를 함께 담아 낸 프로그램 운영은 참가자들에게 단순한 문화 체험을 넘어, 신라 불교유산의 정신적 가치를 직접 체득하는 소중한 계기를 제공했다.
순례에 참여한 서오 스님(영천 은해사)은 “남산의 마애불 앞에 섰을 때, 천년 전 수행자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그저 발로 걷는 길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순례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형상 너머의 뜻을 전하는 길잡이가 되겠다>
진병길 원장은 “경주 남산은 신라인들의 정신과 수행이 형상화된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깨달음의 길”이라며, “신라문화원은 앞으로도 불교문화유산을 단순히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온전히 체득하고 계승할 수 있는 품격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경주 남산 불교문화 답사는 문화유산의 깊은 뜻을 체험하고 고대 수행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대표적 스님 연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마다 이어지는 이 순례는 불교문화의 본질을 되새기는 귀중한 여정으로, 참가자들의 마음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