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운동화와 캠프
안영준 기자 / ayj1400@hanmail.net 입력 : 2013년 01월 18일
|  | | ↑↑ 팝피아니스트 이권희 | ⓒ CBN 뉴스 | | 제8화. 운동화와 캠프
나의 어린 시절의 흔적은 소풍날에 찍은 단체 사진과 학교 졸업사진 뿐이다.
사진속의 촌스런 나의 모습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검정 고무신 이다.
그 시절엔 평소에는 늘 검정고무신으로 생활했고 운동화는 특별한 날이나, 소풍이나 명절 때 만 신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특별히 운동화를 새로 사러 가기 전날 밤은 설레어서 밤잠을 설쳤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부지깽이로 박자를 맞추며 콧노래를 부르면 아버지께서는
“우리 희야가 엄마하고 오늘 장에 간다고 기분이 좋은 갑네~~ 허허허!” 하신다.
“ 예!!!~~ 오늘 운동화 사준다고 했니더!!!~~”
“ 그래??!!!~~ 우와~~ 좋것네..”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발에 맞는 신발 사면 좋겠는데요..”
“ 와?..큰게 싫터노?..”
“ 예~ 너무 큰거를 신으니까 빨리 뛰지도 못하고..또 ..... 부끄러바서요~~”
“그래도 쪼매 더 낙낙한 거를 사야 내년 까지 신을수가 안있겠나~..발이 빨리 커서 그렇다 아이가~..”
아버지께선 온갖 얘기로 나를 달래셨다.
엄마와 장에 나설 때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 희야!!~~~ 오늘 맛있는 것 마이 묵고 오너레이~~~...”
“ 예~~ 오늘은 운동화도 살깁니다!..” 라고 하면
“우와!~~운동화 까지~~ 권희는 오늘.. 기분 댓길 이것구마....”
“네~~ 갔다 오겠십니더~~..” 하고 엄마보다 앞장서서 뛰어가곤 했다.
엄마는 곡물을 가득 담은 보따리를 머리위에 이고는 손도 안대고 묘기 부리듯 신기하게도 자알 걸으셨다.
시내 장터에 도착 하면 제일 먼저 엄마는 곡물을 현금과 교환 하셨다.
아직도 아주 시골에 가면 그렇지만 옛날 분들은 현금이 없으셨다. 그래서 뭔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농사지은 농산물을 시장에 가지고 나가 도매상에게 넘기고 돈을 만드셨다.
드디어 신발가게에 들어서면 나의 들뜸에 답이라도 하듯 신발 특유의 고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아직도 이 나이가 되어도 새 신발에서 나는 그 냄새에 설레인다.
내가 맘에 드는 신발을 고른 뒤 “엄마!.. 나 이거 ..”
“그래?.. 알았다!! 아지매~~~ 이 신발 좀 큼지막~ 한거 내놔보소..” 난 순간 헉!..
“ 엄마아아~~~ 인자 큰 신발은 신기 싫다 말이다아아~~~~!!!..”
“ 이노무 짜석아~.. 큰 걸 사야 내년 까지 신을 수가 있다 말이다!!!...”
“ 안해 안해 안한다고오오오~~~~!!”
“ 까불지말고 그냥 신어라이.. 아부지한테 맞는다이~~..”
엄마의 최고 무기는 아버지한테 혼난다는 으름장 이었다.
난.. 아버지가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 분 인줄 알기 때문에 하루 종일의 설렘이 푸시식 사그라 들어 버려서 실망하고 기분이 상해서..엄마의 협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 죽어 가만히 있는다 .
이제부터 엄마의 흥정 전쟁이 벌어진다.
“희야~ 신발 쪼매 큰거로 하자~~ 그라믄 맛있는 거 사주께~!!”
“머 묵고 싶노?~ 짜장면 사주까? 과자 사주까?”
그러면 나는 또 맛나는 걸 먹을 생각에 슬그머니 화가 풀어져서는“ 알았다~!!!”
하고 못이기는 척 답을 한다.
그런데 엄마의 본격적인 흥정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엄마는 주인한테 반값으로 뚝 잘라서 일방적으로 값을 들이댄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와이카노?~~~마~절대로 안되니더 ~.“
“아~따 마~ 깎아주면 되겠구마...”
“ 아이구~ 아지매.. 이만 하면 마이 깎는 기지.. 그만 좀 하소..”
“ 아이고~ 그럼 못사것다...희야 그냥 고마 집에 가자...”하며
주인한테 마지막 흥정의 최후 카드를 날리는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난
“ 머????.. 엄마! 난 안사주마 집에 안 갈끼다아아아아~~~..”하고 큰소리 쳤다.
그러면 엄마는 한쪽 눈을 힐끔 힐끔 껌벅 그린다. 그러면 난 엄마의 작전인줄 알고 조용해진다.
그러는 사이 주인아주머니는 “ 아따...마아~~.. 별난 아지매도 다 있네~ 그냥 마아 가져 가소~..” 하신다.
그러면 엄마는 얼른 신을 담고 항상 들리는 시장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 맛있는 우동을 사주시고 시장을 본 후 집으로 오곤 했다.
집에 와서 운동화를 신어보면 얼마나 큰지 엄마께서 안쪽에 못 쓰는 신문지를 빡빡하게 밀어 넣고 신발에 발을 맞춘다. 신발을 신고 아버지께 보여 드릴려고 걸어가면
“아이구 우리 희야~~~.. 멋지네~~”
“ 아부지 너무 커요..” “괜찮다~ 보기좋다~” 하시며 나를 달래려고 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명절날 신발을 신고 나서 이튿날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께서는 운동화 안에 습기방지를 위해 신문지로 꽉 채운 뒤 높은 곳에 보관을 하신다.
“엄마~ 쪼메만 더 신으면 안돼나?~”
“ 안된다! 아낐다가 이담에 어디갈 때 가람(외출용)으로 신어야 된다..”
난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6학년 어느 날... 명절날 외에도 운동화를 맘껏 신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학교에서 보이 스카우트 단원을 모집하는데 보이스카우트의 정신과 활동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내 눈엔 복장만이 너무 멋있게 보였고 운동화를 신을 수 있다는 게 너무 맘에 들었다.
모자와 제복, 허리옆에 차고다니는 구명선. 윗도리에 온갖 마크 부착된 것은 마치 용감한 군인이 될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설레이는지 저녁에 엄마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엄마~.. 학교에 보이스카우트 라고 있는데 .. 나 그거 하면 안되나?~~” 엄마 왈
“ 뭐~?...보이소..뭐라?..”
“아이참!... 엄마는 와그리 무식하노!!!... 어쨌든간에 나 그거 한다아~~~..”
“ 이 노무 손아~ 그기 머하는긴데?...”
“ 으응~.. 그기 머냐하면~...진짜로 멋있는 옷 입고.. 단체로 모이서~~ 여러 가지 배운다네..”
“ 마.. 시끄럽다!.. 저녁때 너거 아부지 오시면 말 해바라..”
“아이.. 엄마가 말해~~” 저녁에 아버지께서 들어 오셨다
엄마가 “보소~~..희야가 학교서 머 한다카는데.. 머하는지 모르겠지만서도..자꾸 하게 해달라 카는데 우짜끼요?~~..”
“그게 머~꼬?..”
그때 아마 내 기억으론 바로 위의 누나가 아버지한테 설득해서 허락을 받은 것 같다.
이튿날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하고 회비와 제복 값을 내고 옷을 받아 집에 와서 입어보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니 얼마나 멋있는지.. 그 제복을 입고 학교 등교할 모습을 상상하니 그날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 모자도 쓰고 흰 장갑까지 끼고 풀 버전 복장으로 마당에 나서는데 내가 사관생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우쭐해지는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학교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애들이 전부 나의 복장으로 시선 집중 했다.
모두들 “우~와!.. ”하고 “저거 무슨 옷이고?..” “ 군복 같다..” 등등 난리였다.
그때 전교에서 20여명 미만인 것으로 기억되며 내가 보이스카우트 도반장을 맡았다.
보이스카우트의 선서구호
“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다음과 같은 조목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믿충도우예친순쾌근용순경“.이라는 12가지 수칙의 앞머리글자를 힌트로 해서 다 외우기도 했다.
그 이후로 보이스카우트는 항상 타의 모범이 되야 함도 배워서 은근히 남을 의식 하게 되고 불편한 감도 있었지만 자랑스러움도 있었다.
여름 방학 때 보이스카우트 연맹에서 주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야영대회가 공설 운동장 숲에서 열리게 되었다.
난 그때 처음으로 야영장 캠프 경험과 텐트 생활을 해보게 되었다. 각 학교 별로 다모이니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과 인솔 선생님, 도우미로 같이 온 엄마들과 한여름 공설 운동장 숲속에서 일주일간의 페스티벌을 했는데 그 경험이 내 평생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학교에서는 지원자가 많지 않아 10명 미만 이었다. 늘 깡촌 시골에서의 생활에서 도시 사람들의 공간에 들어가니 너무 설레이고 여러 군상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군것질 하는게 꼭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것 같았다.
보이스카우트 연맹에서 주최를 했기에 일주일간의 다양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은 마치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다양한 악기연주도 구경하고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각각 준비한 장기자랑과 연극도 있었고, 마술쇼도 처음 보았고 남녀혼합 합창곡, 고적대 퍼레이드 등등..
마술 쇼 중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있었다. 어떤 물건을 기계에 넣으면 그 물건이 자라서 크게 되어 나오는 요술 상자가 있었다. 그 상자 안에 여러 가지의 물건을 넣으면 모든 것이 완성되어서 나오기도 하고 또한 식물 같은 건 다 자라서 바깥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부분에 그 마법사 아저씨가 아기 인형을 집어 넣었는데
“자!!!!!!~ 여러분~~~~ 이 인형이 들어가면 인형이 어떻게 자라서 나올지 궁금하시죠?????...”
우리들은 “와!!!!..대빵 큰 인형이 나올낀가?!...” 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고 잔뜩 긴장하면서 물건이 나오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아주 멋지고 잘생긴 커다란 인형이 나올겁니다.. 인형을 누구를 드릴까요???~~ 이번 야영대회에서 제일 우수했던 대원에게 이 상품을 드립니다!!~~~~~~!..” 하기에
“와아!... 대빵 큰 인형 상품으로 받으면 진짜로 좋겠다 그자?...”하면서 서로 기대에 찬 얼굴로 쳐다보는데
“여러분 !.. 다 같이 수를 셉시다!..”
“하나!..두울!.. 세엣!...” 동시에 다 같이 함성으로 외치니 음악소리와 함께 튕겨 나온것은....
“헉!!!!.. 남자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튀어 나오는 것 이었다.
우린 순간 깔깔 대고 웃으면 함성을 지르고 있는데.. 가까이 걸어오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아닌가... 바로 우리학교 인솔교사로 오신 담임선생님이었다.. 우린 순간 얼마나 깔깔 대고 웃었는지 진짜 그날 최고 대원들은 우리 학교 학생이 된 것 이었다..왜냐면 그 큰 인형이 우리 선생님이었으니까...
마지막날 밤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도 처음 보게 되었다.
마을에서 밤에 불을 자주 피워 봤지만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로 멋있고 운치있는 불이었다. 모두들 둘러 앉아서 건전가요를 부르며 한주간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여러 가지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지막 행사가 끝이 나고 이튿날 학교 운동장에 집결을 해서 해단식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 기운이 없고 힘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일주일간 같이 지냈던 동료들과의 헤어짐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보고싶어 홀로 방에서 엄청 울었다.
저녁에 엄마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 우리 희야~~~ 재밌게 놀다 왔나?..“하셨다. 난 답은 못하고 엄마 품에 안겨 그냥 울기만 했었다
“우리희야.. 아이들과 헤어지니 마이 섭섭했는 갑네...”
“괜찮다.. 며칠 지나면...괜찮아 질끼다...”하시면서 나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셨다. |
안영준 기자 / ayj1400@hanmail.net  입력 : 2013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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